로비스트 박동선과 김한조
구애는 필연적으로 허세와 속임수를 동반한다
노무현이 말하길
" 세상을 바꾸엇다고 생각했는데 돌아 보니 물을 가르고 온 것 같으네.
자네는 정치 말고 더 좋은 것을 하시게"
글쓰기는 비우는 동시에 채우는 일이다. 남이 쓴 글을 읽고 내 머리로 생각하고 스스로 느껴야 한다
로비스트 박동선은 1935년생이니 지금 86세
평남 순천 태생으로 미국 국적의 한국인이다
1955년 20세 미국 유학 미국 조지 타운 대학 행정학과 입학
1959년 24세 학사 졸업
1960년 25세 워싱턴에서 한선 기업을 창업
1965년 30세 미국 영주권 획득
1975년 40세 뉴욕 한남체인을 인수, 회장. 미국 상하원 의원에게 금품 제공
1976년 41세 워싱턴 포스트지가 그의 의회 로비 활동을 폭로, 미국 한국간 갈등 유발- 코리아게이트 사건
1978년 43세 김동조 외무부 장관이 미국 하원 윤리 위원회에 참석해 사건이 일단락된다
1983년 48세 민정당 국제 정치 경제 외교 안보 행정 특보
1995년 60세 미국 거주 대한민국 치안 연합회 이사장
2005년 70세 미국 쌀을 이라크에 팔고 저가의 이라크 석유를 수입하는 스캔들로 인해 미국 연방 법원에서 5년형을 선고받는다
2008년 73세 조기 석방되 귀국하고 사업을 계속한다
로비스트 김한조는 1921- 2012년 91세 사망
1953년 32세 미국 유학 . 아메리칸 대학 경영학 박사. 화장품 회사 "존 앤 비디" 성공
1973년 52세 한국 방문시 박정희 내외가 비밀리에 미국 로비를 부탁한다
1976년 55세 미국 의원들에게 로비 자금으로 인당 50-100만 달라를 제공한다
미국 시민권자인 그는 화장품 사업으로 큰 돈을 버나 코리아게이트 사건으로 박동선과 함께 한국 정보기관의 지원을 받고 미국 정관계 인사들을 매수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는다. 박동선은 의회 증언을 통해 실형을 면죄 받으나 그는 이를 거부하고
1979년 58세 위증및 매수 혐의로 미국 교도소에서 5개월간 복역한다. 당시 미국 정보 기관의 청와대 도청 사실도 들어 난다
1981년 60세 귀국해 흑석동에서 혼자 산다. 귀국후 한국 사회의 멸시 무관심 모함 외면속에서 산다
자서전 "코리아 게이트"를 출판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