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서양

로마 장군 레피두스

골드만 싹쓰리 2020. 5. 4.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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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피두스는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와 함께 로마 2차 삼두 정치의 주역이다

 

그는 형 파울루스와 함께 카이사르를 지지한다

그가 속한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가문은 로마의 명문가로 집정관을 줄줄이 배출한 최고 명문 귀족 가문이다.

반면에 카이사르는 마리우스의 처조카로 명문가는 아니지만

전쟁에서 얻은 군사적 성공으로 전리품과 노예를 팔아 큰 부자가 되고 

갈리아등 3개 속주 6만의 병력을 10녀간 유지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스스로 키운 인물이다

로마 공화정의 명문가들이 카이사르를 싫어한다.

레피두스의 카이사르에 대한 주종관계 협력은 명문가들에게는 굴욕적인 모습으로 비친다

레피두스는 에스파냐, 아프리카, 갈리아의 나르본을 지배하고

스페인에서의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와의 정쟁에서 큰 공을 세운다

시칠리아를 노리다가 옥타비아누스와 대립하고 정권을 잃은 후 정계를 은퇴한다

초기 강력한 세력의 레피두스는 카이사르 사후 카이사르의 양자인 옥타비아누스에게 세력과 명분에서 밀려 권력을 잃지만 운이 좋아서 천수를 누리고 죽는다

 

기원전 49년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출발해 로마로 진격한다. 루비콘 강을 넘는다

레피두스는 로마에 남은 최상위 공직자 법무관으로서 민회를 소집해 카이사르를 독재관으로 추대한다

폼페이우스는 히스파니아 총독이지만 로마에 남아 원로원과 협조하여 카이사르를 제거하고자 견제한다

기원전 48년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와 전쟁시 그는 스페인 총독으로서 스페인 안정화를 이룬다

기원전 46년 카이사르와 레피두스가 집정관 (콘술)에 선출되고 기병대장으로서 키케로등 카이사르 반대파를 제거한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된다

안토니우스의 2개 군단, 옥타비아누스의 4개 군단에 비해 그는 갈리아,, 스페인의 7개 군단을 지휘한다

기원전 43년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와 함께 로마 2차 삼두 정치를 한다

레피두스는 갈리아, 스페인을 통치하고 (서방)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본국과 북아프리카, 시칠리아, 사르데냐를 통치하고

안토니우스는 이집트 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를 통치하기로 한다 (동방)

기원전 42년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가 군대를 이끌고 카이사르 암살범인 브루투스 룽기누스를 공격하러 나갈때 

집정관 레피두스는 로마를 지킨다. 이것이 레피두스 몰락의 원인이 된다

필리피 전투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가 전리품과 토지를 미끼로 레피두스 휘하 군단을 포섭해 자기 세력하에 둔다

기원전 41년 페르지아 전투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는 투항한 안토니우스의 6개 군단을 레피두스에게 주고 북아프리카로 보낸다. 

기원전 36년 옥타비아누스와 함깨 2만 병력을 지휘해 시칠리아를 공격해 메사나에서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의 항복을 받고 8개 군단을 접수한다. 장군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준다

시칠리아와 아프리카에 대한 통치권을 주장하며 옥타비아누스와 대립한다.

레피두스의 14개 군단 (8만명) (투항한 안토니우스의 6개 군단과 폼페이우스의 8개 군단)이 옥타비아누스에게 포섭되고 레피두스는 모든 관직을 뺏기고 유배를 간다

기원전 13년 천수를 누리고 죽는다

 

Good luck for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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