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0 키오자 전투
키오자는 이탈리아 베네토주 베네치아현의 도시이다. 베네치아 남쪽에 위치한다
보통 베니스를 여행하면 다들 본섬과 아이유 뮤직비디오 섬으로 유명한 부라노섬 그리고 무라노섬 이렇게 세군데만 여행한다
베네치아에서 기차로 2시간 걸리는 슬로베니아 국경이 맞 닿아 있는 항구도시 트리에스테도 가 볼만 하다
베네치아에서 리도섬으로 배를 타고 그리고 버스를 이용해 펠레스트리나를 거쳐 남쪽의 키오자에 도착한다
세계 3대 영화제가 열리는 리도섬은 베니스에서 배로 한시간 걸린다
1380년 베네치아의 남단 항구 도시 키오자에서 이곳을 10달 동안 점령하던 제노바 침공군이 베네치아에게 항복한다
지중해 상권을 두고 1258년부터 122년 동안 네 차례나 격돌했던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싸움도 마침내 끝났다. 제노바는 몰락하고 베네치아는 다시금 전성기를 맞으며 나폴레옹에게 점령(1797)당하기까지 상인 공화국의 명맥을 이어나갔다.
키오자 전투는 서양에서 함포가 처음으로 본격 사용됐기 때문이다.
애초의 전황은 베네치아가 불리했다. 제노바는 파도바와 헝가리왕국을 동맹으로 끌어들였다.
1379년 제노바 군은 베네치아의 얼마 안 되는 육지 땅의 관문 격인 키오자를 점령했다. 해상은 물론 육지까지 완전 포위된 베네치아인들은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뭉쳤다. 반목하던 귀족과 신흥상인·평민들이 앞 다퉈 군대에 들어갔다. 부자들은 금고를 털어 나라에 바쳤다.
베네치아는 화약의 힘을 이용해 무거운 돌을 날리는 대포를 함선에 달았다. 명중률이 좋지 않았지만 지름이 20~30㎝인 돌 포탄은 제노바 군의 진지를 허물었다. 전투 후 제노바는 몰락한다
방어전을 펼 때 전선을 시찰하던 베네치아 국가 원수 안드레아 콘타리니는 배고픔을 호소하는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귀족의 집으로 가시오. 그들은 빵이 하나 밖에 없어도 둘로 쪼개 나눠 줄 것이요.” 전쟁을 치르며 베네치아의 함선은 두 배로 늘어났다. 부자들이 돈을 낸 덕분이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