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공산당 서기장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1906-1982년 76세 사망
외교는 내치의 대외적 표현이다
힘의 균형에 의한 평화를 선호하는 군비 증강의 현실주의자이다
경제 개혁에는 소극적으로 경제 성장은 5%에서 2%로 주저 앉는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과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 주석등 소련 최고 권력자로 재직 1964-1982년 58세 즉위. 20년간 통치
급진적이고 개혁, 모험주의자로 미소 대결 노선을 유지하고 벼랑끝 전술의 전임 공산당 서기장인 흐루쇼프를 축출한다.
우크라이나 태생인 그는
1921년 15세 러시아 쿠르스크로 이주한다. 제철소에 근무한다
1923년 17세 공산당 청년 조직인 콤스몰에 가입한다. 측량 기사로 근무한다
1930년 24세 모스크바 공과 대학에 입학한다.
1935년 29세 대학을 졸업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제철소 기사가 된다
소련 육군 정치 장교
1937년 31세 우크라이나 공산당 간부., 몰도바 공산당 위원회 제 1서기
1941년 6월 35세 독소전쟁으로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가 독일군에게 점령된다
육군 정치위원, 여단 인민위원, 남부 방면 군정치 지도부 차장이 된다
1942년 36세 우크라이나가 독일에 점령된다. 캅카스 지역 정치 지도부 차장
1943년 37세 18군 정치부장
우크라이나를 회복하고 서방으로 진격한다. 선임 정치위원인 흐루쇼프가 지지해 준다.
캅카스에서 카르파티아 산맥까지 전쟁 일선에서 활약한다
무력 개입을 피하고 데탕트 실행에 집중한다
1946년 40세 육군 소장으로 전역하고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지구당 위원회 1서기
1950년 44세 소련 최고회의 의원, 몰도바 공산당 중앙위원회 1서기
1952년 46세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소련 공산당 상무회의 후보위원, 서기국 서기로 파격 승진
1953년 47세 스탈린 사망. 육군 중장
1954년 48세 카자흐 중앙위원회 2서기로 카자흐스탄을 장악
1956년 50세 모스크바로 귀국. 소련 공산당 상무회의 후보위원겸 서기
1957년 51세 당 지도부 싸움에서 흐루쇼프를 지지하고 그의 신임을 받음.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
1960년 54세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 주석, 소비에트 연방의 국가 원수 (실권은 소련 공산당 1서기 흐루쇼프)
1963년 57세 경제 문제가 심각해지자 그의 지도력에 의문을 갖고 흐루쇼프 추방 계획에 가담
1964년 58세 흐루쇼프가 순순히 물러나다
여자를 상당히 밝히는 그는 아내 빅토리아를 해외 순방에 안 데리고 가고 전용기 승무원등 애인들을 데리고 나간다
애인을 닉슨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 아내를 데리고 나가는 것은 으리으리한 성에 석탄을 싣고 가는것과 같다"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가 엽색 행각으로 사임하자 분노하고 말한다
" 사내가 계집질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절대로 그딴일로 사퇴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적인 지도자로 다가 온다. 빌리 브란트, 조르주 퐁피두와 친하게 지낸다
건강 악화로 모스크바에서 심장 발작으로 죽는다. 술 담배 과다해 성인병에 시달린다
1970년 64세 금연햇으나 젊은날 피워댄 담배로 건강이 악화되
1975년 69세 심장마비, 중추 신경계 악화, 뇌졸증, 불면증, 통풍, 백혈병, 당뇨, 폐기종, 기관지염등 각종 질병에 시달린다
감사합니다